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파치노 (문단 편집) === [[아카데미상|아카데미 시상식]] 7전 8기 === ||<-4> '''{{{#ffffff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트 순위: 남배우}}}''' || || '''{{{#ffffff 순위}}}''' || '''{{{#ffffff 이름}}}''' || '''{{{#ffffff 노미}}}''' || '''{{{#ffffff 수상}}}''' || ||1위||[[잭 니콜슨]]|| 12 || 3 || ||2위||[[로런스 올리비에]]|| 10 || 1 || ||<|4>공동 3위||[[스펜서 트레이시]]|| 9 || 2 || ||[[덴젤 워싱턴]]|| 9 || 2 || ||[[폴 뉴먼]]|| 9 || 1 || ||'''알 파치노'''|| '''9''' || '''1''' || ||<|3>공동 7위||[[말론 브란도]]|| 8 || 2 || ||[[잭 레먼]]|| 8 || 2 || ||[[피터 오툴]]|| 8 || 0 || 미국 3대 시상식인 <[[아카데미상]]>, <[[에미상]]>, <[[토니상]]>을 모두 받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알 파치노는 [[아카데미상|아카데미 시상식]]과 지독한 악연이었다. [[아이리시맨]]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을 포함하여 남우주연상 5번, 남우조연상 4번, 총 9번의 후보 지명을 받았고 역대 최다 노미 순위 3위에 올라 있지만 수상은 한 번에 그쳤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actors_with_two_or_more_Academy_Award_nominations_in_acting_categories|아카데미 역대 최다 노미네이션 배우 순위 링크]] ] 심지어 역대급 연기로 꼽히는 <[[대부(영화)|대부 1]]> 시리즈로도 수상을 실패했는데, 대부 2로 1975년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놓친 것은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 일로 평가 받는다.[* 다른 필모들은 차치하더라도 대부2로는 오스카를 받았어야 됐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해의 남우주연상은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 [[알버트 피니]]마저 제치고 <해리와 톤토>라는 아주 묻혀진 영화의 <[[아트 카니]]>가 수상했다.] 또 하나의 대표작인 <[[스카페이스]]>로는 [[골든글로브상|골든글로브]] 후보에만 올랐고 아카데미에는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했다.[* 스카페이스는 현재는 명작 취급을 받지만 당시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인한 영화라서 논란이 되었는데, 보수적인 면이 있는 아카데미상은 이런 영화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외국어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게 기생충이 사상 최초일 정도로 다소 보수적인 면이 있다.] * 1973년 제 4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 파치노는 <[[대부(영화)|대부 1]]>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됐다. 아카데미 이전에 개최된 제7회 전문가 비평가 협회상에서는 남우주연상으로 수상, 제30회 글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며 남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 시킨 아카데미의 후보 선정에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영화 상에서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말론 브란도]]보다 더 많은 출연 시간을 가진 주인공이었음에도 대부의 조연 배우들인 [[로버트 듀발]], [[제임스 칸]]과 함께 [[아카데미상|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조연상 부문으로 배정되었다. * <[[대부]]1>에서 잘못된 부문의 후보에 오른 것 같냐는 질문에 1979년의 젊은 알 파치노는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오, 물론이죠. 확실히 그랬어요. 터무니없는 일이었죠. 속이 쓰린 일이었어요." 당시 연극 무대에 서고 있었던 알은 시상식 불참을 결정했다. 당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말론 브란도는 헐리우드가 인디언 차별을 한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며 불참했고 때문에 대부의 주연 두명이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알 파치노는 주변으로부터 아카데미에 노미 거부 편지를 쓰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는데 "그냥 둬. 그냥 둬. 분란 일으킬 거 없어(Let it go. Let it go. Don’t make waves.)"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록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TV로 지켜보았던 알은 불참했다는 사실이 불편해져서 조연 후보로 올라간 모순점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1979년 플레이보이지 인터뷰에서 "Oh, sure. Definitely. That was outrageous. It’s things like that that get you a little sour. I decided to pass the ceremonies by. There were certain people around me who wanted to write a letter, who wanted to announce that I would not accept the nomination. I would always say, “Let it go. Let it go. Don’t make waves.” But then, even though I didn’t go, I watched it on TV. I felt bad. I didn’t care for that kind of contradiction."라고 인터뷰했다.[[https://scrapsfromtheloft.com/2018/02/16/al-pacino-playboy-interview-1979/|링크]]]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74oscar2.gif|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74oscar.jpg|width=100%]]}}}|| ||<-2><#00001b> '''{{{#fff 1974년 제 46회 아카데미 시상식[br]남우주연상 후보들}}}''' || * 1974년 제 4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형사 서피코>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되며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했다. <[[대부(영화)|대부]]>를 함께 찍은 다이앤 키튼과 같이 참석했던 알은 약간 취한 상태였다고. 게다가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이상하게 만져 "마치 제 머리 위에 새둥지가 자란 것 같았어요."라며 엉망이었던 본인 헤어스타일을 스스로 혹평하기도 했다. 첫참석에 너무 긴장이 됐기 때문에 긴장되면 나오는 평소 습관처럼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알 파치노는 옆자리 [[제프 브리지스]]에게 "남우주연상은 시상하지 않을건가 봐요."라고 물어봤는데 그 때 제프 브리지스가 지었던 이상한 표정을 5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고 최근 밝힌 적이 있다.[* 2020년 1월 지미 키멜쇼에 첫 출연하여 이 때 일을 상세히 회고했다.] "이거 3시간 짜리예요."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젊은 알은 나머지 2시간은 뭘해야할지 억장이 무너졌고 남우주연상 차례가 다가오자 "제발 나는 아니어라, 제발."하고 빌었으며 마침내 [[잭 레먼]]이 호명되자 자신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Al Pacino by Lawrence Grobel 45p [[https://books.google.co.kr/books?id=osqeRQwzZocC&printsec=frontcover&hl=ko#v=snippet&q=serpico&f=false|링크]]] * 이후 <[[대부(영화)|대부 2]]>, <[[뜨거운 오후]]> ,<[[용감한 변호사]]>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참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앞으로는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그동안 시상식을 즐기지 못해서 기피했지만 마침내 그 순간을 즐기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1979년 인터뷰를 통해 고백했다. 80년대에는 연극 무대에 집중하면서 후보에 오르지 못하다가[* 다만, 이 80년대에 [[브라이언 드 팔마|드 팔마]] 연출 작 [[스카페이스(1983)|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의 경력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평가되는 명연을 펼치고도 수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반면, 1984년도 골든글로브에서는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었고 알 파치노 팬들 사이에서는 대부 2부 남우주연상 수상 실패와 더불어 [[스카페이스]] [[토니 몬타나]]역으로 노미네이트 실패가 가장 아쉬운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아카데미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인 이 영화를 대놓고 외면했었고 알 파치노도 결국 그 피해를 봤다. 오죽 안타까웠던지, 동료 배우들이 노미네이트 실패 소식을 듣고 간이로 상을 제작해 알 파치노에게 상을 선물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 일화. [* 추가로, 알 파치노가 [[https://www.today.com/video/al-pacino-got-a-fake-oscar-after-not-getting-nominated-for-scarface-79150661988|직접 인터뷰에서 해당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딕 트레이시]]>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두 번째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했다. * 1992년작인 <[[여인의 향기]]>에서야 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때문에 수상소감 첫 마디를 '''"제 연패를 끊어주셨네요!(You broke my streak!)"'''[* [[대부(영화)|대부 2]]의 명대사 'You broke my heart!'를 자체 패러디했다.]라고 하며 재치있는 농담을 했다. 수상 당시 객석에 있던 모든 영화 관계자들이 알 파치노가 상을 받고 단상 앞에 서자 한참 동안 기립 박수를 보냈다. [youtube(p0vE7pR5gg8)]아카데미 수상 당시 영상 [[https://youtu.be/SJ-KVzHkYLwe|수상 소감이 들어있는 7전8기 영상]] * 아카데미와 악연이 깊은 것과는 별개로, 후보 자체에는 많이 이름이 올랐었기에 다양한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같은 해 아카데미 조연상과 주연상 후보에 오른 역사상 12명의 배우 중 한 명이다. 알 파치노는 199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인의 향기]]의 프랭크 슬레이드 역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글렌게리 글렌로스>에서 리키 로마 역으로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남자로 한정하면, 역사상 단 세명만이 이 기록을 달성했는데, 다른 두 명은 [[배리 피츠제럴드]][* 다만, 피츠제럴드의 경우에는, 나의 길을 가련다(1944)에서 늙은 신부 역할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즉, 한 역할로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모두 이름을 올린 셈. 이는 1929년 1회 시상식으로 포문을 연 오스카의 이후 모든 역사까지 통틀어도 하나 밖에 없는 특이 케이스이다. 피츠제럴드의 수상 후, 아카데미가 한 영화에서의 역할 당 한 후보 노미네이션으로 규칙을 변경함에 따라, 피츠제럴드는 할리우드 역사상 전무후무한 케이스로 남았다. 또한, 두 후보 중에서 조연상만 수상을 성공하였기에, 여러모로 제이미 폭스와 알 파치노와는 미묘하게 다른 케이스이다.]와 [[제이미 폭스]][* 참고로, [[제이미 폭스]]는 2004년 작 [[레이(영화)|레이]]와 [[콜래트럴]]로 이듬해 2005년 아카데미 각각 주연상과 조연상의 후보로 올랐다. 그리고 [[레이(영화)|레이]]에서의 호연으로 남우 주연상 수상에 성공했다. 1993년 둘 다 후보에 올랐지만 남우주연상만을 수상한 알 파치노와 같은 케이스.][* 공교롭게도 파치노와 제이미 폭스 모두 남우주연상을 수상케한 캐릭터가 '''시각 장애인''' 역이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이다. * 이외에도, 역사상 4년 연속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5명 중 한명이다. 다른 네 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1958-1961년 아카데미), [[말론 브란도]](1952-1955)[* 추가로, 말론 브란도는 4년 연속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유일무이한 배우이다. 반면, 알 파치노는 대부1에서의 역할이 남우주연상이 아닌 남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됨에 따라 3년 연속 남우주연상 후보 노미네이션에 그쳐야 했다.], [[제니퍼 존스(배우)|제니퍼 존스]](1944-1947), 델마 리터(1951-1954)이다. 알 파치노는 대부 1로 197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뜨거운 오후]]로 197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4년간 연속으로 후보에 오르는 진기록을 썼다. 다만, 이 중에서 알 파치노는 델마 리터와 더불어 4년 연속 후보에 오르고도 모두 수상에 실패한 케이스다.[* 참고로, 델마 리터는 이후에도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계속해서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이에 비하면 후일 수상에 성공한 알 파치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반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말론 브란도]]는 각각 1961년과 1955년, 4년 중 4번 째 후보에 오른 마지막해 수상에 성공하며 세 번의 잔혹사를 끝냈고 [[제니퍼 존스(배우)|제니퍼 존스]]는 첫 해인 1944년에 수상에 성공하였다. * 특히, 이 네번의 수상 실패에서 세번 째인 1975년 아카데미 대부 2부 [[마이클 콜레오네]] 역으로 후보에 오르고도 수상에 실패한건 아카데미의 큰 실수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해이다. 1975년도 수상 후보를 보면 [[잭 니콜슨]]에 [[더스틴 호프만]]에 영국의 명배우 [[알버트 피니]]에 이름 값들이 그야말로 쟁쟁한 해인데, 정작 수상은 <해리와 톤토>라는 영화의 [[아트 카니]]가 수상했다. 당해년도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대부 2의 알 파치노와 차이나 타운의 [[잭 니콜슨]]의 사실상의 2파전이라고 평가받던 해였다.[* 실제, 아카데미의 전초전 격으로 평가받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골든글로브]]에서는 잭 니콜슨이 수상에 성공하였다.] 물론, 레니의 [[더스틴 호프만]]과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의 [[알버트 피니]]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들 각자의 경력에서 연기 퍼포먼스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각각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의 연기나 볼케이노 에서의 연기보다는 못 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중론이다. 반면 대부 2의 알 파치노와 차이나 타운의 [[잭 니콜슨]]의 연기는 그들 경력에서도 최고의 퍼포먼스로 첫손에 꼽히는 작품들이고 때문에 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둘에게 기대가 쏠렸다. 그래서, 알 파치노의 연기 경력에서 희대의 명연으로 평가 받는 대부 2의 [[마이클 콜레오네]]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 실패한 것은 알 파치노 개인으로서 가장 아쉬웠던 수상 실패로 손꼽힌다. 보통 평론가들 사이에서 알 파치노의 최고 명연을 꼽으면, 대부 2나 [[뜨거운 오후]], [[스카페이스(1983)|스카페이스]]의 연기가 TOP3로 손꼽힌다.[* 이외에도, 대부1, 형사 서피코, [[용감한 변호사]], 글렌게리 글렌로스, [[히트(영화)|히트]], [[여인의 향기]], [[칼리토(영화)|칼리토]], [[도니 브래스코]] 등 숱한 영화들 에서도 명연을 보여주었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중에서도 대부 2를 알 파치노의 인생 연기로 보는 평론가가 대다수이고 당시 분위기도 [[잭 니콜슨]] 보다 대부1, 형사 서피코로 2년 연속 수상에 실패한 알 파치노의 손을 들어줄 것이란 예상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상은 [[아트 카니]]가 하면서 차라리 당해년도 노미네이트에 실패되었던 컨버세이션의 [[진 핵크만]]을 대신 올려서라도 수상시켜줬어야 되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 또한, 2022년 현재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부 1(1972), 대부 2(1974), [[뜨거운 오후]](1975), 대부 3(1990), [[여인의 향기]](1992), [[인사이더]](1999), [[아이리시맨]](201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그 중 대부(1972)와 대부 2부(1974)가 이 부문 수상작이다. * 최고의 연기파 슈퍼스타였던 만큼, 명감독들이 많이 찾았고 그만큼 감독 복이 많았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9명의 감독과 함께 작업 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올리버 스톤]], [[시드니 폴락]], [[윌리엄 프리드킨]], [[워렌 비티]], [[스티븐 소더버그]], 배리 레빈슨, [[마이크 니콜스]]. 이외에도, 아카데미 감독상만 수상 못했을 뿐이지 할리우드 역사상 전설적인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 [[시드니 루멧]]이나, 거장 [[리들리 스콧]], 위대한 뉴욕파 영화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미국의 명감독 [[마이클 만]], 현역 할리우드 감독 중 최고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함께한 감독들 이름만 나열해도 어마어마한 이름값을 자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